백제의 요서 지배 기록, 학계 주장 정리



백제의 요서 지배 기록, 학계 주장 정리

백제가 요서를 지배했는가? 에 대한 논쟁은
다음의 중국 측 기록에서 시작합니다.
고려는 요동을 경략하여 차지하고, 백제는 요서를 경략하여 차지하였다. 백제가 다스린 곳을 진평군 진평현이라 이른다.
其後 高驪略有遼東 百濟略有遼西 百濟所治 謂之晋平郡 晋平縣
《송서》 97권 동이열전 백제
진나라 말기, 고구려가 요동과 낙랑을 경략하자, (백제는) 요서 진평현을 차지하였다.
晉末 駒麗畧有遼東樂浪 亦有遼西晉平縣
《양직공도》 백제국사
위나라(북위)가 군사를 보내 백제를 공격했는데 백제에게 패했다. 백제는 진대부터 요서, 진평 2군을 차지하고 있었다.
魏遣兵擊百濟 爲百濟所敗.晉世百濟亦據有遼西晉平二郡也.
《자치통감》
당시 중국은 북조와 남조로 나뉘어 있었는데
남조 측 역사서에 뜬금 없이
백제가 요서 지방과 산동 지방을 점령했다? 라는
이상한 기록이 역사서에 등장하죠
심지어 이런 기록은 1회성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남조의 역사서들 전부에 걸쳐서 지속적으로 나오고
그리고 양직공도와 같은 다른 관련 사료에도
백제가 요서 지방을 점령했다 라는 기록이 나옵니다.

상식적으로 납득이 안되는 기록입니다.
1, 백제가 점유했다는 지역은 강성했던 국가
전연, 후연, 남연 또 북위가 점령한 지역입니다.
고구려 조차 감히 전쟁을 못 한 국가들인데
한반도의 작은 백제가 이 지역을 점령했다?
물리적으로 불가능합니다.
2.. 이상하게도 해당 기록은
정작 당사자인 북조 국가의 사서
그리고 백제의 사서에 전혀 안나옵니다.
백제의 역사 기록이 워낙 없다고 해도
최소한 북조의 사서에는 나와야 하죠
이런 이유로 인하여
정말 다양한 상상력과 가설이 나왔습니다
또 여전히 논쟁적인 연구가 진행 중이죠
백제의 요서 관련 문헌에 대한 학계 입장은
다음과 같습니다.

정리해 보면 크게 3가지죠
1. 요서 영유부정설 - 부정설
2. 요서 경략설 - 절충설
3. 요서 공략설 - 긍정설
대략 위의 3가지이며 부정설이 다수설이고
절충설, 긍정설은 소수설입니다.
4. 대륙백제를 주장하는 것은 사이비 유사역사로
학문으로 취급을 하지 않습니다.

1. 요서 영유 부정설은
1) 백제의 요서 점유 관련 문헌 기록은 오기로
남조의 관행에 따른 과장 된 기록이라 봅니다.
남조 왕조의 경우 작위를 애초 통치 지역이 아닌
형식적인 지역명을 명예직으로 사용해 수여했습니다.
중원에서 밀려난 왕조였기 때문입니다
자신들이 실제로 영유하지 못 한 중원 영토이지만
정통성을 주장하기 위해 북방 영토에 자사나 태수직을
명예직으로 임명하곤 하였죠.
이런 관행과 더불어서 외국의 사신이 입조한 경우
해당 국가가 요청한 그대로 작위를 수여했습니다.
때문에 백제의 요서, 산동 지역의 기록은
이런 형식상의 명예직 작위 기록 또는
외국에 대한 정보의 부족으로 인한 오류일 뿐
실제 점유한 사실을 기록한게 아니라는 의미입니다.
남조 사서의 작위, 관제에 대한 연구 결과물입니다.
2) 동성왕의 북위와의 전투는 오기라 봅니다
북조에는 그런 전쟁 기록이 없으며
교차 검증이 안되는 전쟁이기에 신빙성이 없습니다
또한 백제의 상황이 고구려에게 망해서
북조 왕조와 싸울 상황도 아닙니다.
백제가 남조와 교류하며 고구려를 북적이라 불렀는데
당시 남조는 북조를 똑같이 북적으로 지칭했음으로
백제가 고구려와 싸운 내용을 두고 혼동하여
북위로 착각했다고 여깁니다.
3) 백제는 군현제를 적용하지 않았습니다.
요서군 진평군 같은 군현은 존재할 수 없습니다.
4) 요서 지역은 전연, 후연의 본거지이며
산동 지역은 남연의 본거지입니다
남북조의 군대가 수시로 전투 하던 곳입니다.
고구려조차 수도가 함락되며 고전을 했던
선비족을 상대로 백제가 해당 요충지를 점령
또 지배했다는 것이 물리적으로 불가능합니다.
보다 합리적인 해석이라 판단되어
현재 학계의 다수설이 되었습니다.


2. 요서 절충설, 경유설 은
백제의 요서 지방관련 기록의 정체가
백제의 활발한 해상무역과 교역의 결과라 봅니다
상업활동 과정에서 설치 된 백제의 임시적인 관청이며
이를 기록한 것으로 보는 것입니다.
통일신라 시기 상업 활동을 위해 산동지역에 설치 된
신라방 신라소의 등이 그 유사 사례로 예시 됩니다.
백제의 요서 관련 기록을 영토나 군사적 관점이 아닌
인적 교류와 민간 진출로 해석하는 방법이며
이 내용은 국사 교과서에 채택됨으로써
사실상 가장 많이 알려진 학설입니다
다만 역사 학계에서는 이와 상반이 됩니다.
남조 사서의 연구결과가 축적이 되면서
소수설로 분류됩니다.

3. 요서 공략설은
백제의 요서 관련 기록을 보다 적극적으로 해석해
실질적인 군사적 지배의 결과물로 파악한 경우입니다
이도학의 경우 광개토대왕과의 전투 과정에서
요서 지역을 백제가 실효 지배했다고 봅니다
강종훈의 경우 부여 유민이 북위 정권에 협력하며
그 과정에서 나타난 기록으로 평가합니다
강종훈 설을 잠시 소개하면
이 시기 부여가 멸망을 하였는데
부여의 유민들은 대거 북위 정권에 투항하였고
북위에서 장군이 되어 군사를 이끌고
각지에서 전투를 벌이며 활약했습니다.
이들이 요서 지역을 점유했단 것이죠
백제의 다른 국명은 남부여국이고
왕실의 성씨 또한 부여씨입니다.
남조 국가들이 북위에서 활동한 부여와
자신들에게 조공한 백제국을 혼동했다 봅니다
공통점은 해당 지역을 장기적으로 지배한 것이 아니라
일시적으로 잠시 지배를 했었다는 관점입니다.
연구 논문들에서 상상력으로 추정할 수 밖에 없는
해당 연구의 어려움을 토로하고 있습니다
학계에서는 소수설로 분류됩니다.

4. 대륙백제설
그냥 일고의 가치가 없는 유사역사학입니다.
후연의 본거지이자 마지막까지 북연이 저항한
요서지방에 영토를 장기간 영유한 다는 가설은
시대 배경과 상황에서 논리적으로 말이 안됩니다
남연의 본거지 산동과 남조의 본거지 절강, 강소 등을
만약에 백제가 진짜로 지배했다면
한국사 이전에 세계사의 수정이 필요합니다.
학문이 아닌 판타지의 영역입니다.
주의해야 하는 것은
다수설은 그것이 정답이란 것이 아닙니다.
이 분야의 경우 워낙 자료가 없는 관계로
나름 합리적인 논거를 제시한 학설에
현재 동의하는 사람이 많다는 뜻입니다
학계의 다수설은 부정설이지만
현행 교과서의 경우 절충설을 중심으로 서술 됩니다
엄연히 존재하는 기록을 부정하여 제외하는 것도
역사 기술에 논리적으로 문제가 되기 때문입니다.
교과서의 내용은 수능 시험을 보기 때문에
만약 부정설을 일방적으로 시험에 출제하면
바로 실제 존재하는 남조 측 사료를 이유로
오답이라며 소송에 걸리게 됩니다.
때문에 교과서 내용은 최대한 논란을 피해
그런 기록이 있다 정도로 간략하게 서술 됩니다.
이상 이런 방향으로 연구되는 중이며
지금도 추가적인 연구가 계속 나오는 중입니다.
워낙 자료가 없는 시대의 역사이기 때문에
사실상 상상력이 반이 되는 영역입니다
백제사 관련 연구의 특징이자 비극이죠
백제 연구 자체가 지닌 한계점이 매우 큽니다.
백제 요서 지배설의 평가는
각자 판단하시면 될 듯 합니다.
